신이치는 늘 그게 문제였다. 적당히를 모른다는 것. 있는대로 신이 난 신이치가 주는대로 곧잘 받아 마셨더니 아무리 술이 강한 유마라도 속이 다소 거북했다. 오랜만에 갖는 동기 모임만 아니었다면 적당히 거절했을 텐데 애매한 타이밍이었다. 추억팔이와 상사의 험담 등으로 점철된 시끌벅적한 펍에서 겨우 벗어난 후 시계를 보니 거의 자정에 가까워져 있었다. 늦을 것...
무릎과 맞닿은 왼쪽 가슴에서 쿵쿵, 심장이 울렸다. 일반적인 속도에 비한다면 조금 느릴지는 몰라도 일정한 리듬으로 뛰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다. 살아있다는, 분명한 증거. 둥글게 말았던 등을 더욱 옹송그린 나오토가 스스로의 무릎을 좀 더 당겨 안았다. 가슴과 맞닿은 부위에서 더욱 확실한 고동이 느껴졌다. 작게 숨을 뱉어내자 이마 위...
타닥타닥, 지금 창문을 두드리는 저 소리는 빗소리인가… 어렴풋이 짐작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도쿄의 무채색 하늘을 그대로 비추는 넓은 창에 빗줄기들이 작은 강을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묵직하게 툭툭 두드리다가, 바람이 불면 쏴아아 하고 일순 몰아치며 두터운 유리를 흔들고, 이내 서로 어지럽게 얽히더니 흘러내렸다. 추상화가 그려지는 캔버스를 관망하듯 한동...
"머슴, 가서 아이스크림 좀 사와라."흠흠, 목을 가다듬은 고남순이 건방지게 턱짓을 했다.허?어이없는 감탄사를 내뱉은 흥수가 걸음을 멈추고 남순을 노려보았다. 바로 뒤에서 따라 걷던 남순도 멈춰서더니 말간 얼굴로 흥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벚나무 아래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머리며 어깨 위로 벚꽃잎이 팔랑팔랑 내려앉았다."지금 뭐라고 했냐.""아이스크림, ...
시작은 그 한마디. [날 찾아서, 붙잡으면, 소원 한 가지 들어줄게요.] 소원의 제단에 무엇을 놓을지 순간 마땅히 떠오르진 않았으나, 그 즐거운 듯한 얼굴이 마음에 들어 받아들였다. “...이렇게 어려울 거라고 말해줬어야지.” 망연히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엷고 투명한 나비처럼 잡힐 듯 말 듯 팔랑거리며 그는 또 한 번 시야로부터 빠져 나가버렸다...
“너는 정말 알기 쉬운 친구야.” 큰 유리잔 속에 꽂힌 스트로를 휘휘 젓던 수하가 그렇게 말했다. 각진 모서리가 둥글게 녹아내린 얼음들이 스트로의 움직임을 따라 달그락거렸다. 입술을 가져간 수하가 혀를 빼꼼 내밀어 먼저 스트로의 끝을 찾아 감지하고는 가볍게 물었다. 그대로 빨아올리자 알갱이가 톡톡 씹히는 자몽에이드가 따라 올라오며 뽀그르르, 하는 소리를 냈...
- 아저씨, 무슨 생각해요?수하가 버릇처럼 늘 하던 질문이 불현듯 떠올랐다 사라졌다.어떤 시답잖은 대답을 해도 그저 기쁘게 웃던 하얀 얼굴도 함께.틈만 나면 던져지는 짧은 질문에 큰 의미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의미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 생각했던 반복된 질문들이 수하에겐 얼마나 행복하고 반짝이는 순간이었을지 깨...
"솔직히 말해봐요. 나 포동포동하게 살 찌워서 더 맛있게 잡아먹으려는 속셈이죠?""...아니라고는 말 못하겠군.""얼마나 더 냠냠 하시려고? 요즘 진지하게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니까요.""안심해. 목숨만은 살려줄게."빵빵하게 차오른 배를 문지르며 투덜거리는 수하에게 솔직하게 응수해준 성훈이 가볍게 미소지었다.요즘 성훈이 예전에 비해 자주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
운동장은 온통 시끌벅적했다.빛의 속도로 점심식사를 끝마친 피끓는 청춘들이 한 구석에서는 와아아 몰려다니며 축구를, 다른 한 구석에서는 서로 어깨 부딪혀가며 농구를 하느라 난리였다. 교복에 흙먼지가 묻든 말든 뭐가 그리 신나고 즐거운지 뛰어다닌다. 여자아이들은 운동장 벤치에 앉아 서로 핸드폰을 교환해보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완연한 봄이었다. 봄햇살이 그...
헤드폰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이 아무 의미 없이 공기중으로 부서지는 느낌이었다.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터벅터벅 걸어가다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밤공기에 수하가 뱉어낸 하얀 숨이 흩어졌다. 가슴이 답답해 대충 코트만 걸쳐 입고 무작정 걸었더니 온몸이 커다란 얼음조각으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머플러 하나 두르지 않은 긴 목이 시려워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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