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하지? 이건 정말 좋지 않은데."손바닥을 펴서 진정하라는 제스쳐를 취했으나 별 효과가 없어보였다. 불투명한 막이 한겹 씌어진 듯한 눈이 이미 흐물흐물 풀려있었다. 무슨 이상한 약이라도 한 건지 완전히 맛이 갔다. 솥뚜껑처럼 커다란 손이 덥썩, 수하의 손목을 붙들었다."그만하라니까!"결국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남자는 아랑곳 않고 수하의 손목을 붙...
눈발이 본격적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내려앉자 안 그래도 차가웠던 겨울 공기가 더더욱 날카롭게 얼어붙었다. 웨이벌리가 마련해준 안전가옥의 안뜰 위로 하얀 눈송이가 떨어져 노랗게 변한 잔디 곳곳이 듬성듬성 하얗게 변했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요원들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한 일리야의 입술에서도 눈처럼 새하얀 입김이 담배연기처럼 흩어졌다.대부분 온화한 기...
"솔로가 당신을 찾고 있어요. 들어가 봐요." 이틀동안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던 그녀의 눈가에 겨우 미소가 돌아왔다. 영원처럼 느껴지던 그 이틀간을 분주하게 열고 닫히던 문 옆에서 장식품처럼 그저 서 있기만 했던 거대한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직하게 말하는 개비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안도가 스며들어 있었다. 개비가 한참이나 고개를 꺾어야 눈을 마주할 수 있...
[아저씨, 나 좀 데리러 와줄 수 있어요?]수하가 하교할 시간쯤 성훈의 휴대폰에 들어온 짧은 메시지였다.평소의 수하라면 데리러 와달라고 하는 대신 스스로 성훈에게 찾아왔을 텐데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메시지를 읽자마자 수행하겠다는 조직원들을 물리고 직접 운전을 해 수하의 학교로 찾아갔다. 고급 외제차에서 새까만 수트를 입은 키 큰 남자가 내리자 하교하던...
대체 저런 괴력은 어디에 숨겨져 있었던 걸까.비리비리하게 말라서는 꽃화분 하나 제대로 옮길 수 있을까 했는데, 장정 두 명을 번쩍 들어 집어던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이 떡 벌어졌다. 말 그대로 굉장했다. 저절로 나오는 휘파람을 불며 실없이 웃고 있는 미르를 가볍게 흘겨본 썬이 세 번째 장정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넣고 니킥을 날려 쓰러트렸다. 빨리 피하지 ...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담배가 필요한 밤이었다.마침 누나가 부재중이라 집 안에서 태워도 상관 없었지만, 담배만큼이나 차가운 공기도 필요해서 흥수는 대충 점퍼를 걸쳐입고 현관을 나섰다. 문을 열자마자 살을 에일 듯한 칼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흩트려 놓았다. 복잡한 머릿속까지 단번에 얼려버릴 것 처럼 위협적인 겨울밤이 흥수를 에워쌌다. 대문을 밀고 나오며 주머...
기묘한 빛을 담은 눈동자였다.폐부를 찌르는 눈.저 너머 어딘가의 세계를 유영하는 듯한 눈동자와 마주친 찰나의 순간, 내면의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투명한 눈동자가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크게 뜨여진 채 자신을 뜷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그대로 멈춘 것 같았다. 난생 처음 마주친 소년의 신비로운 눈동자에 사로잡혀 꼼짝도 할...
한 두방울씩 후두둑 떨어지던 빗방울이 점차 굵어지더니 곧 쏴아아-하고 쏟아지기 시작했다.미간을 찌푸리며 까만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 흥수가 손에 쥐고 있었던 우산을 펼쳤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펼쳐진 우산 위로 빗방울이 시끄럽게 떨어져내렸다.저녁이나 한 끼 먹자는 부름에 고모댁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무래도 하늘이 심상치 않다며 우산을 챙겨주시는 걸 귀찮다...
낭패다. 아차한 순간 포위되어버렸다.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고개를 흔들어 털어내며 재빠르게 머릿수를 세어보았다. 적어도 열명이다. 열명. 후일 조폭들과 맞짱 떠서 십대일로 이겼다는 무용담을 우쭐거리며 늘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정말 망상에 불과하고, 진짜 낭패다. "이걸 어쩌냐 꼬맹아? 이제 도망갈 곳도 없는데?"입가부터 귀밑까지 길...
고속열차는 덜컹거림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긴 다리를 겨우 접어 오랜 시간을 갇혀 있어야 하는 흥수와 남순에겐 제법 큰 고역이었다. 별 다른 대화 없이 찌뿌둥한 허리를 조금씩 움직거리기도 하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하릴 없이 창밖만 바라보기를 몇 시간, 드디어 종착역인 부산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의자에 늘어져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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